“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요한 8, 7-8.)
네게의 복음에서 예수님의 다양한 비유들은 그 중심주제가 ‘하느님의 나라’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당신의 사명은 곧 하느님 나라의 완성이며, 인간적인 불완전함과 한계, 그리고 죄의 뿌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의 나약함을 당신 자신을 통해 극복해 가도록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는 때로 인간의 극단적인 양면에서 완전히 자유로와질 수 있는 길로 초대하고 계시다는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죄가 없다 여기는 사람부터....” 과연 누가 가능하겠습니까?
매일 매일의 시작과 마침을 오로지 주님을 생각하고, 그분의 뜻과 사명에 깨어 생활하기를 노력하는 사람은 더욱 자신의 한계와 불완전함에서 한생이 다하도록 자유롭지 못함을 겸손되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그점을 지적하시면서 ‘너그러움’, 포용과 기다림의 지혜를 갖추라고 하십니다. 비록 받아들이기 쉽지 않고, 자신에게 한을 심어준 사람이라면 물론 쉽지 않겠지요.
신앙생활은 보다 더 고유한 자신의 삶을 더욱 깊이 감사하며 순간순간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도록 도와줍니다. 이 세상에서 생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창조주 하느님과의 관계가 결코 소홀히 되지 않도록 그 관계를 유지해가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몫입니다. 내가 배고플때 그 배고픔을 다른 사람이 대신 해결해 줄 수 있겠습니까?
신학적으로, 영성적으로 예수님께서 땅에 쓰셨다는 표현에대해 많이들 궁금해 합니다. 그런데 정말 궁금한 것일까요? 여인의 죄목을 일일이 나열하고 계셨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돌을 들고 여인과 함께 헐레벌떡 달려온 사람들의 이름을 한사람 한사람 쓰고 계시지 않았을까? 이것은 저의 추측입니다. 우리 자신이 궁금한 것 다 알아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학 주석서 어디에도 예수님이 흙바닥에 무어라 쓰셨는지 정확하게 이런 의미였다 라고 말해주는 자료는 없습니다.
죽을때까지 모든 것 이해가 되지 않으면 한 두 가지는 남겨놓고, 주님께 직접 여쭈어보는 것도 지금을 쫓기듯 달려가는 우리들에게 신선한 여유로움과 지혜가 될 수 있습니다. 코로나로 힘든 시기, 사순 제 5주간도 여러분들만의 고유한 행복, 만들어 가십시오. 함께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