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잠자리에 들어 포근한 이불속으로의 휴식이 행복감을 주는 순간 쾅하는 천둥소리와 번쩍하는 번개에 이어 무섭게 창문을 두드리는 굵은 빗소리가 방안을 뒤 흔들어 벌떡 일어났다. 메마를 대로 메마른 대지에 하늘도 더는 참을 수 없었던지 마침내 비를 내리고 있다.
밤새 내린 비는 아침의 햇살을 가리고 뒷마당에 수북이 깔린 낙엽들 위에 스민 수분에서 나오는 찬 공기는 폐 속까지 타고 들어가는 짜릿함마저 느끼게 한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상쾌함인지, 캘리포니아의 광활한 산들을 삼켜 버렸던 산불로 지쳐있던 겨울나무들이 이제야 숨을 쉬겠구나 하는 안도의 숨이 저절로 나온다.
이제 며칠 남지 않은 2020년의 험난했던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의 글을 담으려 해도 지금의 현실이 너무 어두워 내 안의 생각을 빛으로 표현하지 못함이 안타깝다. 성당 안마당 한편에 마련된 소박한 구유에 누워계신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며 이천 년 전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모습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의 모습이 내 생애 처음으로 가슴 절절하게 다가왔다.
화려하게 장식된 성당 내부와 제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수많은 신자들의 열기, 성탄을 축하하는 성가대의 아름답고 우렁찬 성가로 성탄 이브의 밤은 늘 북적이고 화려했다. 이제 늘 그러했던 성탄 밤의 모습은 사라져 버렸고 춥고 깜깜한 밤 서른 명 남짓한 신자들이 바치는 작은 촛불 속에서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였다. 멀찍이 서서 눈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 신자들의 어깨가 왜 그리 춥고 쓸쓸해 보이는지 콧 등이 시큰해졌다.
마당의 불이 꺼지고 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자 정리되지 않는 복잡한 심정이 밀려왔다. 지금의 상황이 그분의 탄생 때 모습처럼 초라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하늘의 별을 따라 예수님을 경배하러 먼 길을 왔던 동방 박사들처럼 우리 또한 그 별 빛을 가슴에 담아 예수님을 맞이하였고 예수님은 사랑이라는 빛으로 우리에게 답하셨다. 결국은 모든 게 지나갈 것이라는 분명한 사실을 기억하며 내 마음속에 간직한 작은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소중히 간직하며 이 한해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맺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