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승천 대축일
1독서 사도 1,1-11
2독서 에페 1,17-23
복음 마르 16,15-20ㄴ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복음. 마르 16,15)
주님 승천 대축일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되는 날에 하늘로 올라 가신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이 되는 날은 5월 13일 목요일이 되지만 지역에 따라서 부활 제7주일로 옮겨 지내고 있습니다.
십계명의 제1계명은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 하라.’ 입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만을 흠숭해야 하는 이유는 하느님 안에서 하나가 되기 위함 입니다. 인간을 비롯한 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뜻은 ‘하나가 되는 것’ 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죄로 인해서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되었고 죄의 결과로써 죽게 되었습니다. 죄로 인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삼위일체 하느님, 예수님께서 오셔서 인간과 함께 사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그리고 승천하셨습니다.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가신 길은 우리 인간도 똑 같이 가야하고 또 갈 수 있는 길입니다. 그 길은 하느님과 하나 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승천은 하나가 되는 하느님의 뜻을 완성하는 신비이며, 죄로 인해 손상된 인간의 품위가 완전히 회복되는 은총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은 우리도 당신이 가신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희망은 우리가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걸어 감으로써 성취됩니다.
모든 것의 참된 모습은 시련을 겪으면서 드러납니다. 시련은 원석에서 순금을 골라내듯이 진짜가 아닌 것을 골라내는 풀무질입니다. 죄는 진짜 모습을 감추고 가짜가 진짜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속임수입니다. 시련을 겪는 것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며, 십자가를 통해서 영혼이 정화되어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부활의 완성이 승천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고 하십니다. 복음 선포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느님과 하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는 것은 모든 삶 안에서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삶에서만 하느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 자체로써 가짜이고 벌써 하느님과 분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승천의 신비는 우리 일상의 삶 안에서 실천되는 신비여야 합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1독서. 사도 1,11)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곳은 '갈릴래아' 즉 우리의 삶의 현장이며,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지 말라'는 것은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신비가 실천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합리적으로는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이 믿음을 통하여 실제 생활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행복할 수 있고, 슬퍼하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고,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믿음의 힘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주님 승천의 신비는 세속적 얽매임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상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생각을 고집하지 말고 성령의 인도에 따라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나를 인도해 주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기를 빕니다.’(2독서. 에페 4,17-18)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느님은 모든 선의 근원이십니다. 성령은 삼위일체 하느님입니다. 그러므로 내 생각대로 하지 말고 좋은 것을 하는 것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가령 좋은 것인 줄 알면서 하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좋은 것을 하고자 하는 마음은 성령의 이끄심이고, 하기 싫어 하는 마음은 나의 생각일 뿐입니다. 이럴 때는 즉시 나의 생각을 접고 좋은 것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매사에 이런 행동이 생활화되면 세속적인 것에 발목 잡히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주님 승천의 신비는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은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