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성월 5월을 보내며
사람이 나무 열매를 먹은 뒤, 주 하느님께서 그를 9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창세 3, 9-10)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이분이 네 어머니시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 19, 26-27)
가톨릭 신자들에게 성모님은 어떤 분일까요? 그리스도 전통 교회가 성모님에 대해 교의로 가르치지 않았다 하더라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그분과의 친교는 자연스럽게 그분을 나으시고, 기르신 어머니께로 향하게 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성모님의 존재는 교회를 더욱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어린 갓난 아기가 엄마를 찾고, 그 따사로움의 품을 그리워하든 성모님의 현존은 길을 잃고 밤새 헤매이고 있는 우리의 삶의 길에 생명의 빛이 되어주심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때론 인생의 길의 방향을 잃고, 자신이 누구인지 조차 가물가물 할때가 있습니다. 지금의 내적 어둠이나 불안함, 내일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나약함이나 과거의 잘못된 습관이 고개를 들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지금 당신은 어디의 삶은 어디에 놓여있는가? 내면의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이분이 당신의 어머니 입니다. 어머니! 당신의 아들입니다.”
한생을 작은 소리로, 오로지 가슴에 담고만 살아오신 분입니다. 속마음을 늦은 밤시간에 촛불앞에 꺼내놓고, 이런 체험을 하신분께만 드러내 보이시고, 푸념을 하셨을까요? 당신의 외아들이 집을 떠나 어렸을때부터 함께 자랐던 요한이 광야에서 세례를 준다는 소식에 짐을 꾸리고 때가 되었다고 인사를 건네는 아들의 모습을 그대로 말없이 받아들였던 그때의 섭섭함 그러나 기꺼이 성부의 뜻을 잘 아셨기에수많은 시간들이라 하더라도 당신의 운명이라 속으로 밀어넣는 모습이 성모님의 본래 모습이라 여겨집니다.
신자들의 일상은 성모님 사셨던 때보다 2천년 후라고 하더라도 창조주 하느님 생각하고, 그분의 뜻에 따라 호흡하는 하루 하루의 기도와 내일에 대한 희망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언제든 우리 각자의 고유한 삶의 자리에서 세상이 놀랄만큼의 믿음과 자유로움과 바다만큼의 깊이, 넓은 마음이 진정한 영적양식임을 잊지 않는 새로운 한주간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이제 부활시키 끝나고 연중시기로 접어들었습니다.
마음으로 편안한 성모님의 자리 마련해 드리는 한주간으로 살아갑시다.
영적독서
1. 1사무 2, 1-10 한나의 노래
2. 루카 1, 46-56 마리아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