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는 분주한 아침 홀로 여유로이 식탁에 앉아 신문을 보는 아버지의 모습이 여유롭다기 보다는 이 세상과 동떨어진 곳에 살고 계시는 듯한 낯설음으로 다가온다.
여전히 마음은 십여년 전에 떠나오신 고국에 둔 채 그 곳 소식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맺는 아버지의 일상에 왜 내가 지루함을 느끼는지.... 문득 아버지의 그런 일상의 끝과 시작이 외로움 때문이라 걸 왜면한 채 살아가는 나를 들여다 본다. 작년 봄 페기종으로 여러번 수술을 받으며 많은 고비를 넘기고 회복기에 들어서긴 하셨지만 아기처럼 약해진 호흡기로 늘 감기에 기침을 달고 사시는 아버지.
그나마 술을 좀 드셨을 때나 이런 저런 애기를 하시더니 이젠 술 한잔도 마실 수 없으니 일상적인 인사말 외에 나와 오가는 대화는 어느 날 부터인가 점점 더 줄어져만 갔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늘 말씀이 없고 자식들에게 다정함이 없는 무둑뚝한 분이셨다.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기억은 두가지. 하나는 네 다섯살 무렵 내가 좋아하는 세발 자전거를 사들고 저 멀리 뚝길을 걸어오는 아버지의 모습. 또 하나는 우리가 어릴 적 술을 좋아하시던 아버지가 과음을 하시고 엄마와 냉전 중 나를 데리고 동네 구멍 가게에 가서 꽈배기 한 봉다리를 사주셨는데 그걸 본 엄마가 " 너 그거 먹으면 혼날 줄 알어 !" 하시며 내 손이 닫지 않는 높은 곳에 올려 놓으셨다. 그걸 엄마 몰래 의자를 놓고 올라가 한개씩 빼먹던 기억이 난다.
미국으로 결혼하고 와서 살았던 처음 오 년 외엔 사십 년이 넘게 함께 살고 있건만 아버지와의 애틋한 기억이 그것 밖에 없다는 사실에 내게 얼마나 아버지께 마음을 닫고 사는지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식들에게나 엄마에게 칭찬이나 격려의 말을 잘 할 줄 모르는 아버지의 완고한 성격은 늘 자신을 스스로 외로운 존재로 만드는 분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 아버지를 남편으로 맞은 엄마는 흔히 말하는 팔자소관으로 여기며 사시지만 그 안에 쌓인 섭섭함은 거의 불치병 수준에 다 달았으니 덩달아 아버지께 무심한 나는 엄마와 맺어진 단단한 동지애로 아버지를 따돌림 시킨 게 사실이다.
아침에 일어나 휘청거리며 화장실을 향하는 아버지의 얼굴은 예전의 그 모습이 아니다. 밤새 불면증으로 시달리던 병상에서의 모습처럼 편안함 이러곤 찾아 볼 수 없는 피곤함으로 가득 찬 얼굴, 난 오늘도 아버지의 그 모습에 얼굴을 돌리는 인색하기 이를 데 없는 나쁜 딸이다.
언젠가 맞이할 그 날, 아버지의 모습이 아기처럼 환하고 순한 모습이기를 주님께 기도 드리며 외로움의 벼랑 끝에 서 계신 아버지께 기꺼이 손을 내미는 착한 딸이 되고 싶다. 마음은 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