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1주일
1독서 에제 17,22-24
2독서 2코린 5,6-11
복음 마르 4,26-34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복음. 마르 4,31)
세상만사 모든 일은 다 때가 되면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때는 하느님 때입니다. 문제는 하느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우리의 때를 억지로 만들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빨리 결과를 보고 싶어 하고 빨리 성과를 내려고 하지만 괜히 헛수고만 하면서 죽을 고생을 합니다. 세상만사 인생살이는 결코 우리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되어있습니다.
하느님은 세세하게 우리를 보살피십니다. 1독서의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때입니다. “내가 손수 높은 향백나무의 꼭대기 순을 따서 심으리라.” 이 말씀은 고난 중에 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자유와 해방을 알리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고난을 통해 희망의 열매를 맺게 하는 분입니다. “높은 나무는 낮추고, 낮은 나무는 높이고, 푸른 나무는 시들게 하고, 시든 나무는 무성하게 하는 이가 나 주님임을 알게 되리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매순간에 관심을 가지는 분입니다.
우리 삶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때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어지는 모든 일을 성실하게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주어지는 일을 성실하게 행할 때 하느님의 때는 어느덧 우리 삶 안에서 실현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하듯이 진심으로 하십시오(콜로 3,23).” 아무리 작은 일일지라도 하느님을 대하듯이 하는 사람은 위대한 일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작은 사랑으로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작은 데서 시작됩니다.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복음).” 작은 씨앗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되고 작은 아이가 자라서 큰 어른이 되는 것처럼 세상의 이치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 작은 것의 시초는 하느님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일을 무시하면 하느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루카 16,10).” 어떤 일에서 성과를 내는 사람은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입니다. 주어지는 일에 꾸준하게 성실할 때 그것이 모여 어느덧 풍성한 결실을 거두게 됩니다. 영적인 일이나 세상의 일이나 다 그렇게 이루어집니다. 구원도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되고 전문가나 장인도 작은 일에서부터 만들어집니다.
하느님은 보이지 않는 분입니다. 믿음은 보이는 것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확신이자 의탁입니다. 보이는 것은 언젠가 반드시 사라지지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확신에 차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확신에 차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2독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기 위해서는 낮아지고 겸손해져야 합니다. 교만한 사람들의 눈에는 결코 하느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린이처럼 되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
작은 일에 성실하기 위해서는 항상 감사하는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감사하는 태도는 그 자체가 기도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감사하고 기도하는 삶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