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4주일
1독서 에제 2,2-5
2독서 2코린 12,7ㄴ-10
복 음 마르 6,1-6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복음. 마르 6,4)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 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에 대해서 그들이 알고 있었던 사실이 선입관으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복음. 마르 6,3) 예수님은 우리와 똑 같은 사람이지만 우리와 똑 같지 않은 하느님입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건 안 받아들이건 그것의 그들의 선택입니다. 마찬가지로 일상 삶에서 예수님을 받아들이건 안 받아들이건 각자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선택에 상관없이 우리와 함께 사시고 우리 가운데에서 일하십니다. 그 사실을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들이 듣든 듣지 않든, 자기들 가운데에 예언자가 있다는 사실만을 알게 될 것이다.’(1독서. 에제 2,5)
세상은 상식만으로 이해될 수 없습니다. 불의한 일을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고, 죽음을 상식적으로 알 수 없습니다. 믿음의 세계는 상식을 벗어난 영역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인간의 능력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하느님의 섭리는 오묘합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딱 맞게 일어나서 일이 풀릴 때 ‘오묘하다’ 라고 합니다. 오묘한 일은 평범한 일상의 삶 안에서 일어납니다. 평범함 안에 오묘함이 있고, 오묘함은 평범한 일상 가운데 체험됩니다.
오묘하신 하느님을 보기 위해서는 약해져야 합니다. 약해진다는 것은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내려놓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불행해지는 이유는 자기의 생각과 감정에 집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돈, 명예, 사람 등 무언가에 집착되어 있으면 다른 것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2독서. 2코린 12,9)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약한 분입니다. 뼈가 드러나도록 매를 맞고, 침 뱉음 당하고, 못 박혀 죽어가면서도 대항 한 번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장 강한 분입니다. 약함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강함입니다. 약함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파멸됩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약해지면서 죽음을 이긴 강한 분입니다. 이 세상 어떤 것도 예수님의 약함을 이길 수 없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강해져야 한다고 부추깁니다. 돈이 많아야 하고, 많이 배워야 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하고, 남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시고, 낮은 자리에 앉아라고 하시고,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말하는 대로 강해지려는 사람은 극히 좁은 세상 안에서 살게 되며, 거기에는 자유가 없고 영원한 생명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대로 사는 사람은 약해도 강하고, 적게 가져도 풍요롭고, 좁은 공간에 살아도 자유를 누리며 영원한 생명을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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