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승천 대축일
1독서 묵시 11,19ㄱ; 12,1-6ㄱㄷ. 10ㄱㄴㄷ
2독서 1코린 15,20-27ㄱ
복음 루카 1,39-56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성모님의 승천은 예수님의 승천과는 다릅니다. 참하느님이고 참사람인 예수님의 승천은 스스로의 승천이라면 우리와 꼭 같은 사람이신 성모님의 승천은 예수님의 불러 올림에 의한 승천입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성모님처럼 하늘로 불러 올림을 받을 것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하느님께서 우리 자신에게 직접 하시는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구약의 예언자들, 이스라엘 백성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 예수님의 제자들,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 의인과 죄인 등등 성경 속의 사람들을 통하여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성경을 읽어야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형성되고 성경 말씀이 ‘지금 여기’ 나의 삶 안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루카1,39-40)
‘그 무렵’에 마리아는 성령으로 아기 예수를 잉태하고 있었고 나이 많은 엘리사벳 역시 세례자 요한을 임신하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몸도 편하지 않은 상황에서 엘리사벳을 ‘서둘러’ 찾아 갑니다. ‘서둘러’ 간 이유는 마지못해 간 것이 아니라 엘리사벳에게 축하를 해 주고 함께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 입니다.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은 이웃 사랑의 실천입니다.
작은 관심과 따뜻한 말 한마디는 사람을 기쁘게 합니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겨자씨 한 알의 비유, 누룩의 비유가 그것입니다. 하느님은 대단한 일을 통하여 일을 하는 분이 아니라 작고 보잘것 없는 일 안에서 일을 하십니다. 겨자씨 같이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면 거룩한 일이 됩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아 간 것은 작지만 거룩한 일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이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행복지기를 원한다면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 11,28)
하느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즐겁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고자 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신체의 모든 부분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생각하고 묵상하다 보면 어느 듯 걱정이나 두려움 등 온갖 어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모님의 태를 통하여 예수님이 태어나게 하십니다. 이 신비는 그대로 우리의 삶에도 이루어지는 신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일상의 삶 안에서 예수님이 태어나게 하십니다. 성모님의 삶은 바로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성모님의 삶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아갔듯이, 우리도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고 찾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로써 이웃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죄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 하는 등 우리의 기도는 이웃에 대한 관심이고 사랑이며 방문입니다.
마리아의 드러나지 않고 조용한 삶은 바로 우리의 일상 생활입니다. 그 안에서 하느님께서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우리 일상의 삶이 거룩한 삶이 됩니다.
마리아의 승천은 우리도 승천할 수 있다는 확신이자 희망입니다. 마리아처럼 일상의 삶을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아갈 때 우리도 마리아처럼 하늘로 불러 올림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