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와 복음은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라는 내용입니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주 너의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 너희는 그것들을 잘 지키고 실천하여라.”(1독서. 신명 4,2.6)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2독서. 야고 1,22)
예수님 시대에 유다인은 반드시 손을 씻고 음식을 먹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율법의 규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자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시비를 겁니다. 여기서 ‘사람의 규정’ 은 율법은 율법인데 사랑이 없는 율법입니다. ‘하느님을 헛되이 섬긴다.’ 라는 말은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다.’ 라는 말입니다. 율법은 ‘사람의 규정’ 일 뿐만 아니라 또한 ‘하느님의 규정’ 입니다. 율법에 사랑이 들어가면 ‘하느님의 규정’ 이 됩니다. 율법을 종합하고 요약해 놓은 것이 십계명입니다. 율법의 정신은 사랑이며 십계명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지침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를 꾸짖는 것은 그들이 사랑 없는 율법을 가르치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율법 자체를 나쁘게 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마태 5,18) 여기서 ‘한 자 한 획’ 은 ‘사소한 것’ 이라는 의미이며, ‘없어지지 않는다.’ 라는 것은 ‘영원하다.’ 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사랑이 들어가면 영원한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규정을 철저히 지키고자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음식을 먹기 위해 손을 깨끗하게 씻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표현입니다.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고 쉬는 것도 중요한 율법입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렛날에 쉬셨기 때문에 하느님처럼, 하느님과 함께 쉬는 것 역시 하느님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일만 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쉬어야 몸도 마음도 즐겁고 사랑도 할 수 있습니다.
‘한 점 한 획도 없어지지 않는’ 율법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것은 교회의 가르침입니다. 영성체 한 시간 전에 공복재(空腹齋=뱃속을 비우는 것)를 지키는 것, 매주 금요일에 금육재(禁肉齋)를 지키는 것은 율법이며 교회의 가르침입니다. 공복재를 지키는 이유는 거룩한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기 위해 몸과 마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 사랑의 실천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금요일에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절제와 희생의 마음으로 ‘깨어있어라.’ 는 가르침입니다. 그것 역시 예수님께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영성체 한 시간 전에 단지 음식을 먹었다 안 먹었다, 금요일에 고기를 먹었다 안 먹었다 하는 것을 따지는 것은 사람의 규정에 얽매이는 것이지만,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하느님의 규정을 지키는 것이며 믿음의 실천입니다. 사람의 규정을 사랑으로 지키면 그것은 하느님의 규정이 됩니다. 바리사이들 율법학자들은 사랑 없는 규정만을 가르쳤습니다.
사람이 일을 할 때 가지는 세 가지 태도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Job입니다. 일을 Job으로 대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단지 돈입니다. 그에게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최상의 가치입니다. 성취감이나 사명감이나 다른 내적 가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Career입니다. 일을 Career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경력을 쌓는 것입니다. 그는 과장이 되고 부장이 되고 전무가 되고 사장이 되어서 돈은 물론 지위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갖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에게도 역시 내적 가치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Calling입니다. Calling은 하느님의 부르심 입니다. 일을 Calling으로 대하는 사람은 돈이나 지위나 명예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일을 소명으로 받아들이며 기꺼이 헌신적으로 일을 합니다. 그는 성실하신 하느님을 닮는 사람입니다.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다.’(루카 16,10)는 말씀처럼 사소한 규정 하나라도 사랑으로 행하는 사람은 큰일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작은 일이라도 사랑이 들어가면 위대한 일이 됩니다.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지 규정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