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의 대축일
(연중 제25주일)
1독서 지혜 3,1-9
2독서 로마 8,31ㄴ-39
복음 루카 9,23-26
9월은 순교자 성월이며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의 정신을 기리는 날입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는 조선교회의 첫 사제이며, 선교활동과 선교사 영입을 시도하다가 1846년 9월 16일 26세의 나이로 새남터에서 군문효수(軍門梟首 조선시대에 국가에 큰 죄를 지은 죄인을 군율에 따라 목을 베고 군문에 매달던 형벌.)로 순교했습니다. 성 정하상 바오로는 조선 땅에 천주교 사제가 없을 때 평신도로서 실질적인 조선 천주교회 지도자였으며, 1839년 9월 22일에 어머니 유소사와 누이 정정혜와 함께 순교했습니다.
조선 땅에서 천주교 박해는 1791년 신해박해(辛亥迫害) 부터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 때까지 100여년에 걸쳐 일어났으며 무려 10,000여명이 순교하게 되었습니다. 그들 중 103위가 1984년에 성인품(聖人品)에 올랐고 2014년 8월에 124위가 복자품(福者品)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박해의 원인은 사상적으로 유교사상과 그리스도교 평등사상의 충돌, 사회적으로 전통적인 예절인 조상의 제사를 거부했다는 것, 정치적으로 당파 싸움의 희생물로서 이용되었습니다.
순교 영성이 무엇인가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4년 시복(諡福) 미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순교자들에게 최고 가치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복음. 루카 9,23)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는 말씀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주어지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살다 보면 원하지 않는 일도 일어나며, 누구라도 원하지 않는 일을 반가워할 리가 사람은 없습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마태 26,39ㄴ)
신앙은 기분에 따라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감정과 기분을 이기고, 싫지만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입니다.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날 때, 그것을 하느님의 뜻 안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이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어리석은 자의 눈에는 파멸로 여겨지겠지만 이것이 바로 하느님을 신뢰하는 삶이며 하느님과 함께 사는 삶이라고 1독서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지혜 3,2-3)
자연 현상은 받아들여야 할 뿐, ‘받고 안 받고’의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처럼 주어지는 삶도 자연 현상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싫어서 이리 저리 피하는 사람에게는 하느님은 몸에 걸치고 있는 액세서리 정도에 불과합니다. 세상은 거부한다고 거부되는 것이 아니고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복음. 루카 9,24)
주어지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영적인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 힘은 이미 우리 안에 있지만 보통 때는 드러나지 않다 가도 어떤 이유가 있으면 드러납니다. 바로 ‘무엇 때문에’라는 이유가 붙으면 힘이 발휘됩니다. 답은 ‘예수님 때문에’입니다. 부모님들이 ‘자식 때문에’라는 이유가 붙으면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듯이 ‘예수님 때문에’라는 이유가 붙으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우리가 오늘 기념하는 순교 성인들은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바친 분들입니다. 그분들이 죽음 앞에서도 신앙을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수님 때문에' 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이런 저런 일을 하는데 예수님께서 가만히 보고만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반드시 도와 주십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도 예수님의 도움으로 이겨낼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2독서. 로마 8,37)
'예수님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고 '예수님 때문에' 걱정을 내려놓고 '예수님 때문에' 어려움을 받아들이고 '예수님 때문에'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 때문에' 어떤 일을 할 때는 쉽게 한계에 부딪히지만 '예수님 때문에' 라는 이유가 붙으면 어떤 일도 해 낼 수 있습니다.
순교성인들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예수님 때문에’ 라는 믿음 덕분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예수님 때문에' 라는 믿음으로 하면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며 순교 영성을 살아가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