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주일
1독서 창세 2,18-24
2독서 히브 2,9-11
복 음 마르 10,2-16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복음. 마르 10,6)
하느님의 뜻-우리의 행복
조화를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는 것, 이를 일컬어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며,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자 하느님의 뜻입니다. 세상 만물이 자연의 섭리대로 움직일 때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육신의 아버지의 바람이 자식들의 행복이듯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느님의 뜻은 우리의 행복입니다. 돈이 행복을 주지 않고, 지식이 행복을 주지 않고, 힘이 행복을 주지 않고 하느님께서 행복을 주십니다.
남자와 여자-조화
세상 만물은 음(陰)과 양(陽),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늘과 땅, 낮과 밤, 높음과 낮음, 더위와 추위, 굳셈과 강함 등 다름이 서로 짝을 이룸으로써 질서가 유지됩니다. 홀로 있으면 질서가 없어집니다. 세상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는 사람도 그렇게 만드셨습니다.“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복음. 마르 10,6)
결혼은 신중하게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1독서. 창세 2,24) 합당한 결혼으로 이루어진 부부관계를 천생연분(天生緣分 하늘이 정해 준 인연), 천정배필(天定配匹 하늘이 정해 준 짝) 이라고 합니다. 수많은 사람 중에서 자기의 짝을 찾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 관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복음. 마르 10,9) 어느 문화권에서나 결혼은 특별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신중하게 생각해서 결정해야 합니다. 일시적인 감정으로 이루어지는 결혼이나 이기적인 조건을 따져서 하는 결혼이나 강제적이거나 속임수가 있는 결혼은 ‘하늘이 정해 준 인연’이 아닙니다.
인생이란?
‘인생(人生)’은 ‘살아 있는 삶’ 입니다. 죽은 사람을 인생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삶’ 이란 ‘지금 여기’ 에서 사는 삶입니다. 지나간 어제의 시간은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나의 삶이 아니며, 오지 않은 내일의 시간은 올지 안 올지 모르기 때문에 나의 삶이 아닙니다. 오직 ‘지금 여기’ 만이 내가 누릴 수 있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지금 여기에서 즐겁게 사는 것’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영혼이 평화로워야 합니다. 영혼을 피곤하게 하는 순간적인 쾌락은 평화가 아닙니다.
하늘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 ‘너희 가운데’ 는 ‘지금 여기’ 입니다. ‘지금 여기’ 는 내가 누리는 시간, 내가 만나는 사람, 내가 하는 일입니다. 누구나 ‘지금 여기’ 를 즐겁게 살기를 원할 것입니다. 문제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즐거움’이란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어서 누리는 감정 상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 됨’ 으로써 누리게 되는 영적인 평화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루카 24,36) 예수님 앞에 부끄러운 제자들은 인간적으로 보면 평화를 누릴만한 상황이 아닙니다.
하나가 되기 위해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삼위일체(三位一體, Trinity) 하느님, 한 분이신 하느님입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은 모든 것이 하나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가 됨으로써 우리는 하늘 나라에서 살 수가 있습니다. 하늘 나라는 그 무엇으로부터도 침해를 받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 에서 하늘 나라는 외적인 조건이 어떻든지 간에 누릴 수 있는 평화입니다. 고통을 받으면서도 평화를 누릴 수 있고, 환난 중에서도 평화를 누릴 수 있으며, 죽어가면서도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평화를 누리려면
사람의 힘으로는 영적인 평화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고통과 환난과 죽음까지도 초월하는 영적인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겪으셔야 했습니다.”(2독서. 히브 2,9) 하느님의 은총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예수님과 하나되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일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똑 같이 죽을 수가 없습니다.
할 수 있는 일
자존심을 죽이고, 욕심을 죽이고, 이기심을 죽이고, 불평을 죽이는 일은 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상의 죽음으로 예수님과 하나가 되며, 예수님과 하나됨으로써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는 인생은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