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복음. 마르 10,45)
그리스도인(Christian)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과 행동을 삶으로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실천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 입니다. ‘주님, 주님’ 한다고 해서 믿음이 실천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예수님은 ‘섬기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섬김의 대상은 어떤 특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가톨릭 신자만 섬기는 것이 아니고, 착한 사람만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을 섬기려 오셨습니다. ‘많은 사람을 섬기는 것’이 성자 예수님이 성부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많은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서’ 예수님의 섬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 즉 그리스도인(Christian) 입니다.
섬기기 위해서는 낮아져야 합니다. 종이 되어야 합니다. 나를 섬기러 오신 예수님께서는 나보다 낮은 자리에서 나의 종이 되어 주십니다. 종은 주인의 손과 발이 되어서 주인에게 필요한 것을 해 줍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손과 발이 되어서 나에게 필요한 것을 해 주십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그가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놓으면,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 살고, 그를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1독서. 이사53,10) 예수님은 나를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속죄 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2독서. 히브 4,15) 예수님께서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죄의 유혹을 받습니다. ‘모든 면’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입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이 구원이 필요한 곳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일상의 삶으로 들어오시어 우리와 함께 살아가십니다. 그것이 육화(肉化, incarnation)의 신비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은 예수님으로 인해 거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함께 살아가시는 우리의 일상의 삶이 거룩한 곳이 됩니다. 원죄에 물든 인간으로서는 죄의 유혹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죄가 없으신 대사제’만이 유혹을 이길 수 있고 죄를 없앨 수가 있습니다. 섬기러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일상의 삶 안에서 우리를 섬기십니다. 나를 섬기시는 예수님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내가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을 하지 않고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알 수 없듯이 섬기지 않고서는 섬기는 예수님을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섬김은 먼저 나 자신에게 실천되어야 합니다. 내가 나를 섬기지 않으면 나를 섬기시는 예수님을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모르면서 어떻게 예수님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나를 섬기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잘 대해 주어야 합니다. 나 자신을 잘 대해 주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죄를 지어도 나를 잘 대해 주십니다. 내가 죄를 지으면 마음에 상처가 생깁니다. 상처 입은 내 마음을 예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시고 어루만져 주십니다. 죄 짓고 아파하는 내 마음을 예수님께서 잘 대해 주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나의 구원 때문에 예수님께서 죽으셨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나를 대해 주시는 것처럼 나도 나 자신을 예수님처럼 대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섬김입니다. 자기 자신을 잘 섬기는 사람이 남도 섬길 수 있습니다. 무엇이나 가지고 있어야 줄 수 있는 법입니다. 사랑이 있어야 사랑을 줄 수 있고, 평화가 있어야 평화를 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기를 섬기는 사람이 남을 섬길 수 있습니다.
화가 나면 화가 나는 것이 나의 모습이고, 부끄러우면 부끄러워하는 것이 나의 모습입니다. 내가 화를 내거나 부끄러워도 예수님께서는 ‘모든 면에서’ 나를 섬기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처럼 자기 자신을 섬겨야 합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레위 19,18) 가장 가까운 이웃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남을 사랑하지 못하며 하느님도 사랑하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을 막 대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하느님도 막 대하는 사람입니다. 사랑이 있어야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사랑은 섬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