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3주일
1독서 다니 12,1-3
2독서 히브 10,11-14.18
복 음 마르 13,24-32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복음. 마르 13,32)
오늘 독서와 복음은 ‘종말’에 대해 말합니다. “나라가 생긴 이래 일찍이 없었던 재앙의 때가 오리라...그 때에...어떤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어떤 이들은 영원한 치욕을 받으리라.”(1독서. 다니 12,1-2)
영원한 생명은 구원이고 천국이며, 영원한 치욕은 지옥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구원을 받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2독서. 히브 10,12)
언제 세상의 종말이 올지 모르지만 사람이 죽으면 종말입니다. 죽는다는 것은 창조 이전의 혼돈 상태와 같습니다. “그 무렵 큰 환난에 뒤이어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내지 않으며,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그 때에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복음. 마르 13,24-27)
해도 없고 달도 없는 어둠의 상태에서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조 이전은 죽음과 같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바로 그 창조 이전의 어둠으로 가는 것입니다. 육체가 사라지고 세상의 모든 것이 ‘무(無)’로 끝나는 죽음은 절망 같지만, 실은 창조를 위한 준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위령미사 때 기도하는 것처럼 ‘죽음이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릅니다. 언제 죽음이 닥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복음. 마르 13,32)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있기 위해서는 성실해야 합니다. 늘 성실한 사람은 언제 종말이 오든지 걱정하지 않습니다. 언제 죽든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성실한 사람은 하느님과 함께 있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은 성실하신 분입니다. “여러분에게 닥친 시련은 인간으로서 이겨 내지 못할 시련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성실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에게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십니다.”(1코린 10,13) 성실하신 하느님께서는 늘 우리를 돌보고 계십니다. 온갖 시련 중에서 우리를 돌보고 계시고 죽은 순간에도 우리를 돌보고 계십니다.
성실은 ‘그 시간에 그 일을 항상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성실하시기 때문에 때가 되면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고, 때가 되면 밤과 낮이 바뀌고 계절이 바뀝니다. 삼라만상 모든 것은 제 때에 따라 움직입니다. 세상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성실하게 일하시기 때문에 세상은 제 때에 맞게 돌아갑니다.
깨어있기 위해서는 성실해야 합니다. 성실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시간표를 정하고 늘 그 시간에 그 일을 해야 합니다.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기도를 하거나 늘 그 시간에 그 일을 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항상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사람은 성실할 때 하느님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성실한 사람을 늘 하느님과 함께 있는 사람입니다.
성실하지 못한 사람은 핑계를 댑니다. 핑계는 원죄의 원인입니다. 아담은 하와 때문에, 하와는 뱀 때문에 죄를 지었다고 핑계를 댔습니다. 세례의 은총으로 원죄로부터 벗어났지만 핑계를 대는 사람은 원죄를 그리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불행합니다. 핑계는 달콤한 유혹으로 사람을 불성실하게 합니다. 불성실한 사람은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져 있게 됩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현재의 삶에 성실하자는 스피노자의 말입니다. 스피노자는 젊은 시절에 한 동안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극도로 불안한 상황에서도 그가 성실하게 학문을 연마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 현재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결국 어떤 것도 못하리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알로이시오 성인도 내일 종말이 온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휴식 시간이니까, 이대로 놀겠다.”라고 했습니다. 성실한 사람은 삶을 즐길 수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성실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에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늘 하느님을 의식하기 때문에 깨어있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천사들의 보호를 받습니다. “그 때에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땅 끝에서 하는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복음. 마르 1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