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1독서 집회 3,2-6.12-14
2독서 콜로 3,12-21
복 음 루카 2,22-40
교회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기념하면서 모든 가정이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본받도록 권장합니다. 가정은 최소 단위의 교회이자 모든 사회생활의 근본입니다. 행복은 가정생활에서 좌우됩니다. 가정이 잘 되어야 교회가 잘 되고 사회가 잘 됩니다.
성탄절은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신비입니다. 이것을 육화(肉化 incarnation)라고 합니다. 육화는 각 사람의 삶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기쁨 안에서 예수님 함께 기뻐하시고, 우리의 슬픔 안에서 예수님 함께 슬퍼하고, 우리의 가족 안에 함께 사시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예수님께서 함께 일하십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본받기 위해서는 육화하신 예수님이 가정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가족회의를 할 때도 예수님과 함께, 가족 나들이를 할 때도 예수님과 함께, 밥 먹을 때나 일을 할 때나 휴식을 할 때나 등등 가정의 모든 일을 예수님과 함께 하는 가정이 성가정입니다.
또한 가족이 서로를 대할 때 예수님 섬기듯이 하고 가족이 일을 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 성가정이 됩니다. 예수님이 가족이 되고 서로를 예수님 섬기듯이 하고 모든 일을 예수님 이름으로 하면 성가정이 되어 그리스도의 평화가 그 가정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2독서. 콜로 3,15-17)
어떤 자매님에게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시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터라 처음에는 고무장갑을 끼고 대소변을 받아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시어머니의 몸에 차가운 고무장갑을 댄다는 것은 며느리 된 도리가 아니다 싶어서 예수님 섬기듯이 시어머니를 섬기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 후 그 자매님은 기꺼이 맨손으로 시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낼 수 있었고 심지어 그 일을 하면서 뿌듯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되는 일도 예수님 이름으로 예수님 섬기듯이 하면 어떤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가족으로 모시는 가정은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가정이며 성령 안에 살아가는 가정은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가정입니다. 평화를 주고 일치를 도모하는 성령은 부모를 공경하게 하고 자녀를 사랑하게 합니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자녀들에게서 기쁨을 얻고...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는 제 어머니를 편안하게 한다.”(1독서.집회 3,3-6)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성가정은 세상의 삶과 떨어져서 따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적극적으로 살면서도 자유롭게 살아갑니다. 성가정은 인간의 법에서도 하느님의 법에서도 자유롭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는 인간의 법인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칙령에 따라 호적 등록을 하러 가는 상황입니다(루카 2,1-3 참조). 성전에서 정결례를 치르는 오늘 복음 장면은 주님의 법에 따르는 상황입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의 본받는 성가정은 세상을 무시하지 않으며 세상의 삶으로부터 도망가지 않습니다. 성가정은 육화하신 하느님이신 예수님과 함께 살기 때문에 불가능도 가능하게 합니다. 예수님이 가족이 되는 성가정은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하며 가족이 얼마나 소중하고 복된 존재인지 알게 됩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을 언제라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하나가 나에게 얼마나 큰 기쁨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과 언제라도 전화를 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가 나에게 얼마나 큰 즐거움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내가 우리 가족 중 한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면 곧 답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하나가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에게 언제라도 선물을 보낼 수 있습니다. 이 하나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과 언제라도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에게 나의 아픔을 낱낱이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정용철 《마음이 쉬는 의자》 중에서
가족이 없는 사람은 성모님과 요셉이 직접 부모가 되고 예수님이 친형제가 됩니다. 인간의 힘이 약한 곳, 인간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 고통과 슬픔이 있는 곳, 고독하고 외로운 곳, 그 곳에는 하느님의 각별한 보살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소외되고 불쌍한 사람들, 상처받고 죄 지은 사람들의 친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