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3주일
1독서 지혜 1,13-15; 2,23-24
2독서 2코린 8,7.9.13-15
복 음 마르 5,21-43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복음. 마르 5,36)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이미 죽었는데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아버지가 딸을 잃고서도 두렵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해도 회당장 야이로는 슬프고 절망적이고 두려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려운 원인을 없애 주시지 않습니다. 다만 두려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두려움을 받아들이는 힘은 믿음에서 옵니다.
무엇을 믿을까요?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다는 것,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에 내 영혼이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 어떠한 두려움도 직면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믿음은 마음과 마음을 연결해 줍니다. 복음에서 열 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댑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그 마음을 아십니다.
열 두 해 동안이나 숱한 고생을 하면서 가진 것을 모두 병 치료에 쏟아 부은 그 여자의 마음은 얼마나 간절했겠습니까? 그 마음보다 더 간절한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께서는 죄인들, 병자들, 소외받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간절하게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그 두 간절한 마음이 만나서 그 여인의 병이 나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제자들은 그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구인지를 알고 말씀하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아기는 엄마를 전적으로 믿습니다. 엄마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엄마가 자기를 보호해 준다는 것을 알고, 엄마가 자기에게 먹을 것을 준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압니다. 엄마에 대한 믿음 때문에 엄마 품에 있으면 아무 걱정 없습니다.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엄마는 아기에게 있어서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같은 존재입니다. 아기와 엄마, 서로에 대한 마음은 간절합니다.
간절하고 순수한 마음과 마음의 만남이 믿음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만난다는 것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예수님과 하나가 되면 하느님의 본성이 우리 안에서 회복됩니다. “정녕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때라 인간을 만드셨다.”(1독서. 지혜 2,24)
사람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하느님께로 돌아가고자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죽은 야이로의 딸의 영혼이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죽은 사람이 돈을 바라겠습니까, 명예를 바라겠습니까, 오래 살기를 바라겠습니까? 죽은 사람이 간절하게 바라는 것은 하느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 구원이며 예수님은 우리보다 더 간절하게 우리의 구원을 바라십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2독서. 2코린 8,9)
예수님께서는 항상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우리가 먼저 예수님께 다가가는 것이 아닙니다. 부유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먼저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보다 더 간절하게 우리의 구원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원하는 것’입니다. 기도 안에서 우리의 구원을 원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