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신뢰한다는 의미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이 모든 일을 당하고도 욥은 죄를 짓지 않고 하느님께 부당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욥 1, 21-22)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루카 9, 48)
우리 각자의 고유한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주어진 한계와 미래에 대한 목표, 그리고 흐르는 시간안에서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한 지난날들에 대해 신앞에서 그 모든 궁금함들을 펼쳐놓고, 그 답을 묻지 않는다면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또 신이 아니면 누가 시원한 답을 해 줄 수 있을까요?
인류의 역사와 함께 동반해가는 종교적 신비와 영적인 여정, 신존재에 대한 물음 또 인간과의 관계는 과연 평행선인가? 아니면 이미 분명한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인간적인 도전과 고집스러운 면들로 수긍하지 않는 걸까요? 이에 대하여는 다양한 개인적 선택이 있을 것 같습니다. 신념을 담은 무한한 신뢰의 마음이 담겨있기도 하겠지만 그 반대로 더 이상 물음이 없이 수동적 자세로 어제와 오늘을 변함없이 유지해 가시는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지난 주에 동기신부와 높지 않은 산을 오르다가 제나이보다 다섯배 이상 많이 먹은 나무들이 많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전처럼 USB를 꼿고 저 나무가 알고 있는 정보들을 모두 빼내고 싶다는 생각이 또 들었습니다. 물론 혼자만의 생각이었습니다. 고목에게 묻지도 않았지요.
우리의 삶은 분명 물리적인 삶이지만 동시에 정신적, 영적인 거룩함을 쌓아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적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모두 사라져갈 것입니다. 거울속에 비추어진 모습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이미 먼저 떠나간 기억속의 영혼들을 쫓고 있는 현실을 두려움이나 불안함만이 가득하지 않도록 지나온 한달을 잘 마무리 합시다.
영적독서
1. 2디모 2, 1-13 그리스도의 훌륭한 군사
2. 1요한 1, 5-10 빛속에 살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