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10 하느님에게서 멜키체덱과 같은 대사제로 임명되셨습니다.(히브 5, 8-10)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마르 2, 19-20)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물음은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일생 되묻고, 또 마음깊이 지나온 날들, 앞으로 살아가야하는 날들 모두에 해당하는 진실한 물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시기전에는 단지 구약의 하느님을 예언자들을 통해서 이해를 했고, 하느님의 계획과 원하시는 바를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육화사건과 복음을 통해 전해지는 구체적인 예수님의 모습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살아계신 그분을 그대로 재현해가는 일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
사랑의 삶,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평범한 일상을 복음적 삶이라 하고, 신앙생활이 단지 추상적 믿음의 부르짖음이 아니라 왜? 그분을 따라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그 이유와 목적을 말해준다 할 수 있습니다.
주어진 삶의 시간 동안 열심히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이웃이 누군인지를 언제나 잊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나날들은 결코 신앙생활을 통해 행복을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이미 그 속에 깊이 잠겨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혼인잔치’를 이야기할때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설렘과 축복의 시간, 그 자리에 함께 하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마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때 이와 같은 모습임을 앞서서 준비해가는 사람들입니다. 날마다 성실하게 기도하는 이들이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사제는 언제나 앞서서 당신의 사람들을 초대하고 계십니다. 또 당신의 때를 위해 준비시켜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