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사람이 시키는대로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이 일러 준 대로,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
그러자 그는 어린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다.
15 나아만은 수행원을 모두 거느리고 하느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가
그 앞에 서서 말하였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열왕 하 5, 14-15)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루카 4, 26-28)
시대를 넘어선 예언자, 하느님의 사람은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에 머물러 있을까요? 멋진 수염과 거룩한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일입니다. 우리 자신이 늘 깨어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경건한 시간속에 머물며 흩으러져있는 마음을 추스리는 일상을 살아가다보면 성경의 예언자를 만나는 기쁨, 드라마 같은 기적의 일들은 가장 우선적으로 중요하게 요구되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가장 평범한 일상 그 자체가 기적으로 감사의 마음이 가득해지기때문입니다.
요즘 자연이 보여주는 경이로움에 잠시 눈을 돌려보면 지난 겨우내 숨죽이며 준비해왔던 시간들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이제는 어떤 주저함도 없이 ‘때’를 알아서 저 깊은 땅속에서부터 생명의 기운을 끌어올려 저 높은 여린가지까지 전달해 줍니다. 이러한 생명의 질서는 오로지 창조주 하느님하고만 연결되어 있음을 누가 부인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육의 눈으로 본다.’는 의미에 대해 어느 누구도 망설이지 않고 진실을 말합니다. 그런데 물리적으로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고, 생명이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현상은 마음으로, 영의 눈으로만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고 다른 의미를 말 할 수도 있습니다.
진실한 마음과 신앙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모순된 논리와 체험이 하느님안에서 완성되어 간다는 진리에 순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겸덕의 아름다움은 평범한 일상을 설레게 하며, 눈을 부드럽게 하고, 귀를 잘 들을 수 있도록 풀어줍니다. 그러므로 기적은 믿음이 순수한 이들에게는 낯설지 않게 늘 곁에서 함께 살아갑니다.
영적독서
1. 역대 상 6, 8-36 감사찬양
2. 시편 77, 1-21 곤경의 날에 내가 주님을 찾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