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일깨우시는 예언자의 영
주님께서 수산나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수산나를 처형하려고 끌고 갈 때,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이라고 하는
아주 젊은 사람 안에 있는 거룩한 영을 깨우셨다.(다니 13, 44-45)
너희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또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너희는 사람의 기준으로 심판하지만 나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심판을 하여도 내 심판은 유효하다.
나 혼자가 아니라,
나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함께 심판하시기 때문이다.(요한 8, 14-16)
그리스도 교회의 신앙이 좋은 이유는 각자의 체험과 신앙 여정안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시간의 길이 만큼 영적 열매들이 쌓여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받드시 진정한 행실과 일치하지는 않는다는데에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세례받은 이후의 신앙생활, 영성 생활의 시간적 여정이 아무리 짧아도 그 순수함과 진실한 일상의 고백과 주님과의 소통이 깊다면 얼마든지 생활속에서 성실한 예언자의 역할이 충분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다니엘 예언서의 수산나 이야기는 특별히 사순시기에 참 많은 묵상 요점들을 던져줍니다. 음흉한 두 노인들의 무질서한 내면의 욕구가 상징하는 것들이 무엇일까요? 다양하고 달콤한 세상의 가치와 인간의 마음을 유혹하는 형태들은 우리 각자가 살아가는 삶의 주변에서 언제나 숨을 쉬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서 우리의 내면을 지배하는 힘들, 또는 나의 의지를 이미 넘어서 어느새 길들여져 있는 내 영혼의 상태는 어떠한지를 깨어 살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사람인 예언자의 현존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빛이 어둠을 감시하고, 늘 견제하는 한 우리 곁에 그분들은 머물러 있으며 자신들의 고유한 사명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으로 영원한 생명의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 줄 것입니다.
지금 사순시기에 특별히 깊이 다가오는 예수님의 고독은 당신과 함께 한 제자들의 닫힌 마음들이 열리지 않고,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때와 크게 성장하지 못한 모습으로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여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당신을 알아뵙지 못하는 그 마음들을 책망하시거나 제자들의 부족함을 지적하시기 보다는 당신만의 고유한 사명과 아버지의 크신 사랑에 눈떠가기를 희망하시는 것 같습니다.
또 한주간, 예수님의 수난 여정에 함께 더 가까이 머무는 은총의 한주간 시작합시다.
영적 독서
1. 시편 28, 1-9 주님! 제가 당신께 부르짖습니다.
2. 하바 3, 1-19 하바쿡의 노래(저는 하느님 당신의 명성을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