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이제, 주님! 저들의 위협을 보시고, 주님의 종들이 주님의 말씀을 아주 담대히 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30 저희가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는 손을 뻗으시어 병자들을 고치시고, 주님의 거룩한 종 예수님의 이름으로 표징과 이적들이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사도 4, 29-30)
7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내가 말하였다고 놀라지 마라. 8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요한 3, 7-8)
그리스도교회의 교의와 신앙의 중심은 예수님 부활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만일에 예수께서 부활하시지 않았고, 단지 희망사항으로만 전해오고 있다면 이렇게 2천년의 시간이 넘도록 교회가 이어져 올 수 있었을까?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즉, 거짓으로는 부활의 신비에 담겨있는 창조주의 사랑을 모두 담아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 예수님 공생활 하실때의 다양한 기적들, 표징들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순수하게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사람들의 마음 가짐들을 보면서 그 또한 인간의 한 단면이며, 죄를 상징하는 하나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완고함, 고집스러움, 영원한 죽음으로의 선택 등등
예수님 자신이 곧 하느님의 나라이며,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길임을 믿음안에서 또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부활의 삶이 특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어진 일상에서 언제나 감사와 내적인 자유로움이 늘 함께 부활의 기쁨이나 열매들로 이어지고, 그 결과들로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결과들이란 구체적으로 삶의 변화이며,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곧 믿음의 생활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과 더욱 삶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켜주기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삶을 말하는 이들이란 부활의 진정한 의미를 구체적으로 말로 다 설명하지 않아도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예수를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들의 얼굴의 미소와 따사로움이 곧 하느님을 거울처럼 비추어주기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