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기억, 주님의 죽으심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창세 3, 13)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2 코린 4, 10)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요한 19, 34)
각 종교들의 보편적 상징의 행위 중에 하나는 향을 피워 기도하는 이의 마음의 정화와 주변를 거룩하게 만드는 신앙적, 전례적 행위를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과 영혼의 향을 피워 주님께 온전한 순명의 뜻을 고백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일 것입니다.
요즘은 계절적으로 싱그럽고, 자연이 주는 선물을 가슴에 담기에도 벅찬 계절입니다. 하루 중에서 이따금씩 창문을 열고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맑은 공기의 신선함을 맛볼 때면 순간 영원의 세계로 이끌려 들어가는 듯합니다. 무엇을 비워야 하고, 그 빈자리에 대신으로 무엇을 채워 넣어야 하는지를 망설이지 않게도 합니다. 이렇듯 자연이 주는 지혜를 모두 담아내기에도 바쁜 나날이 될 수 있음을 잊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또한 깨어있는 자의 하루 양식이 됩니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변화를 어떻게 희망하십니까? 태초에 뱀이 일으킨 죄와 관계의 단절 그리고 불안함, 죽음, 제한된 삶 등등 처음부터 뱀의 유혹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인간의 응답이 따랐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빚어지는 오해와 갈라짐 그리고 평생 잊지 못하고 그 굴레 속에서 살아가는 고통 또는 원망과 저주 또 국가간의 관계도 아마 뿌리는 같지 않을까 합니다.
인간 스스로의 치밀한 계획안에서 삶의 방향과 목적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단지 창세기에서 보이는 우연한 죄와 그에 대한 결과의 하나로 죽음이 시작된 그 시점부터 자신의 정체를 그대로 드러낸 ‘욕심’, 무질서한 욕망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나약함과 부자연스러움 등으로 연결되어 우리의 일상을 더욱 불안하고, 앞길을 헤매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길을 완전히 가린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나 반대의 기쁨과 희망 그리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행복 또한 굳건한 의지와 분별의 삶의 결과로 얻어질 수 있다는 논리가 사라진 것 역시 아닙니다. 지금 당신 가슴에 무엇이 담겨있고, 영의 눈으로 보고 있으며 쫓는 것이 영원히 거룩하신 분을 닮아 있는가? 이 물음만이 5월의 싱그러움에 화답할 수 있음을 한 주간 동안 기억하며 맞이합시다.
영적 독서
신명 30, 15-20 생명을 선택하여라!
토빗 7, 17 용기를 내어라, 슬픔 대신 기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