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나무 열매를 먹은 뒤, 주 하느님께서 그를 9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10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창세 3, 9-10)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7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 19, 26-27)
우리의 일상은 늘 더 나은 선택을 위한 시간속에 살아갑니다. 개인의 의지와 경험에 따라 때로는 신앙이 뒤로 밀려나는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요. 그 만큼 인간의 의지와 고유한 경험을 통한 성장은 때로 매우 달콤하게 또는 그럴듯하게 다가옵니다. 그것이 성장인지 퇴보인지, 자기만의 성을 쌓아가는 어리석음인지 겸손하고 거룩한 시간안에서 충분히 검토되어 얻은 결과여야 할 것입니다.
하늘이 허락하신 개개인의 삶은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인간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 중에서 가장 위대함은 누구나 인정하고 존중하지만 창조주를 떠나서 홀로 영원한 생명을 준비해 갈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창조주께서는 당신의 현존을 강요하시며 인간 각자의 마음을 억지로 이끌어가시지 않고, 온전히 자유에 맡겨주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인간의 언어로 신비라고 합니다. 전지 전능하신 분이 나약하기만 한 인간을 해바라기처럼 바라보시며 마음을 돌리기를 기다리신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놀라움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의 완전한 죽으심의 의미는 믿는 이들에게는 일상에서의 분별의 확실한 기준과 흔들림없는 선택의 길을 제시해 주신 것과 같습니다. 더 이상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그릇된 가치와 갈등을 지속시켜 갈 수 없는 분명한 때를 일깨워주신 것입니다.
요한 복음에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당신의 어머니를 맡기시는데, 그 제자는 예수님의 마음에 어떤 모습으로 그동안 자리했었을까요? 제자에 대한 믿음이 있으셨을 것이고, 제자의 진실함, 맑음 등등, 문득 예수께서 세례 받으실때 성령을 통해 성부께서 들려주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하신 말씀처럼 제자에게 어머니를 부탁하고 계시는 것처럼 다가옵니다. 또 한주간, 6월의 성심성월 시작, 하늘의 뜻에 기꺼이 응답 드리는 복된 한주 시작합시다.
영적 독서 1. 시편 84, 1-13 행복합니다. 순례를 길을 걷는 사람들 2. 시편 130, 1-8 주님! 당신께 부르짖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