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결에 들었던 벼락 치는 소리는 겨울이 돼서야 만날 수 있는 비를 뿌려 주었다. 누워있는 엄마를 다그쳐 공원을 걸었다. 살짝 내린 소나기에도 대지는 숨을 고르는 듯 선선한 바람으로 응답한다.
겨울을 향한 가지처럼 말라가는 엄마의 다리, 휘적휘적 옮기는 발걸음이 무거워 보인다. 주변의 어머니들이 부쩍 요즘 들어 하느님 품으로 가셨다. 하늘 고향으로 가시는 분들을 볼 때마다 엄마의 얼굴이 겹쳐진다.
무심히 쳐다보는 듯한 엄마의 무덤덤한 표정, 언제 표정이 있었나 싶을 정도의 무표정인 엄마의 얼굴이 낯설다. 표정을 잃어감은 주변의 사람들을 기억 저편으로 보내는 것과 같다.
이제 엄마는 설명만으로는 그이가 누구인지 기억해 내기가 어렵다.
싱그러운 나무들이 정겨워 벤치에 엄마와 강아지들을 앉혀놓고 사진을 찍었다. 열 번, 스무 번.. 계속 찍어댔지만 엄마의 표정을 잡을 수 없다. 셀카로 같이 찍어 보기도 했다. 여전히 내가 퍼붓는 잔소리에도 엄마의 표정은 무심하다. 전화기 화면을 얼굴 아래로 놓고 “자 웃으세요. 나처럼 이렇게 웃어봐. 엄마”. 아 ~ 활짝 웃었다. 우리 엄마가 하하하!
위를 쳐다볼 때는 웃지 않던 엄마가 아래를 내려다보시더니 활짝 웃으셨다. 살아가면서 내가 힘들었을 때마다 엄마는 늘 그렇게 얘기하셨다. “아래를 봐라. 위를 보지 말고 아래를 봐라. 그러면 편해진다”. 그 말을 증명하듯 아래를 내려다본 엄마는 예전의 웃음을 보여주셨다. ‘아래를 보면 웃을 수 있구나’. 지나고 나면 견딜만했다고 생각했던 어려움은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었던 숨 고르기에 있었던 것 같다.
얼마 큼의 시간이 엄마와 나 사이에 있을지 알 수 없다. 약해지는 육신의 짐을 벗어버리고 맑은 영혼을 가지고 하늘나라에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의 뒷모습이 유난히 더 외로워 보인다. 사람의 뒷모습은 늘 외로워 보인다. 결국 혼자 가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