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예레미야 예언자가 하난야 예언자에게 말하였다. “하난야, 잘 들으시오. 주님께서 당신을 보내지 않으셨는데도, 당신은 이 백성을 거짓에 의지하게 하였소. 16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오. ‘내가 너를 땅 위에서 치워 버리리니, 올해에 네가 죽을 것이다. 너는 주님을 거슬러 거역하는 말을 하였다.’” 17 하난야 예언자는 그해 일곱째 달에 죽었다. (예레 28, 15-17)
그때에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13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시고 따로 외딴곳으로 물러가셨다. 그러나 여러 고을에서 그 소문을 듣고 군중이 육로로 그분을 따라나섰다. 1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마태 14, 13-14)
인간의 나약함 중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건강일까요? 아니면 명예? 또는 경제적인 면? 혹시 맞이한 불행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관련이 있을때 가장 약해질까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일상을 살아가다 갑작스럽게 닥쳐온 일들을 감당할 수 없을때 그 동안 자신이 무엇을 위해서 살아왔는지? 어떤 이유들로 애쓰고, 온갖 정성과 열정을 쏟았는지 깊이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동안의 목표와 희망, 온갖 모든 열정을 쏟은 것이 옳았는가? 정당했던가? 등등 하는 물음입니다. 스스로의 의지적이고, 성실한 신앙안에서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와 신비를 깨닫고자 하는 노력은 잠시의 쉼도 없어야 합니다. 자신 주변에 어떤 예언자가 진정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받아 우리와 머물고 있는가? 세상의 빛으로 제역할을 다하고 있는가를 살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오래전 구약에서 예언자들이 활동했던 시기와 많은 면에 있어서 닮은 점들이 많습니다. 즉, 세상의 권력과 물리적인 힘을 거룩한 하늘의 뜻을 전하는 예언자와 동일시하려는 욕심까지 포기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보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그러한 권력자들(거짓 예언자들)을 위해서 당신의 성실한 종을 보내십니다. 그리고는 더 이상 그들의 잘못에 대해서 묵인하지 않으시고, 책임을 물으십니다.
그리스도 교회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 구세주이심을 믿는 것만이 아니라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개인의 고유한 인생여정에서 그분을 거울처럼 매일 자신의 삶을 비추어보려는 태도가 곧 기도임을 인식하는 것은 다른 공경과 따름의 이해차원입니다. 인간 예수와의 친교, 당신 자신의 사명을 단 한번도 주저함없이 길을 찾아가신 그 길을 동행해 가려는 마음을 지닌 사람은 오늘을 사는 예언자입니다. 또 한주간도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