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영광이 들에 핀 백합꽃 한 송이만 못하나니…’ (마태 6,29)
“주님이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시편 118,23)
매일의 일상에서 무심결에 만나는 꽃, 꽃이 없는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까 잠시 묵상을 해봅니다. 이웃집 담장에서, 집안의 뜰에서, 혹은 내 집 발코니에서, 그리고 산행할 때 산등성이에서 마치 물감을 칠한 듯한 이름 모들 갖가지 꽃을 만나게 됩니다. 불모의 사막에도 이른 봄에 야생 꽃을 피우고, 꽁꽁 언 한겨울에서도 눈꽃을 만납니다. 또한 정원 가꾸는 것을 사랑하시는 우리 신부님과 수녀님의 수고로 성당 주변에서, 그리고 경당의 제대 앞에서 손쉽게 만나는 갖가지 꽃을 볼 때마다, 송이송이 오묘한 자태에 감탄을 느끼지 않는 사람 없을 것입니다.
만물 가운데서 하느님의 마음, 하느님의 얼굴을 읽는다는 말 있지요.
도대체 하느님은 무슨 마음으로 이리도 다양하고 아름다운 꽃 들을 창조하셨을까.
언제부터, 그리고 왜, 이 세상에 꽃을 만들어 주셨고, 왜 이런 현란한 모양과 각양각색의 조화를 선물로 주셨는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극히 작은 아기 풀꽃에서부터 눈부시게 현란한 장미, 백합까지, 꽃마음속에 깊이 들어가 살필 때, 볼 때마다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생명의 경이를 느낍니다. 어느 시인은 색다른 시선으로 “한송이 꽃을 피우기까지의 인고의 시간”을 노래하였고, 또 어느 고승은 “꽃들아, 수고가 많았다” 하고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말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과학적인 이야기를 곁들이면, 감동과 감흥이 시들해지는 것 피할 수는 없겠으나,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맛보는 감각과 함께 호기심이라는 촉수도 선물로 주셨기에 이야기를 잠시 곁길로 돌립니다.
언젠가 PBS 방속국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에 ‘꽃의 기원’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하느님 창조의 놀라운 세계에 감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의 숙명에서 꽃이라는 생존의 비밀이 탄생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우리 지구에서 아니 우주에서 언제부터 꽃이 피기 시작했을까?
대략 꽃이 시작된 것을 약 2억 년으로 잡고 있고 또 실제로 1억 7천만 년 된 꽃의 화석이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인류는 최대한 널리 잡아서 기껏 5백만 년 전에 출현했다고 본다면, 꽃을 우리 인간의 눈을 즐겁게 하려고 만드신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벌과 나비를 위해서 이토록 절묘한 아름다운 꽃을 만드셨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제 상상으로는 아마도 첫 시작은 척박한 환경 탓에서 미약했지만, 날이 갈수록 풍요로운 환경을 맞아 갖가지 모습으로 자태를 뽐내면서 오늘에 이르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오늘의 이 모습으로 태어날 때까지, “꽃아 수고 많았구나” 하면서 인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억겁의 인고의 세월을 지나서 오늘 너 한송 꽃이 태어났구나 하는 감사와 찬미의 기도를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