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현대인들은 이른 아침 눈을 뜨자마자 커피 한잔을 마시며 그 은은한 향기에 마음을 가다듬고 창으로 쏟아지는 밝은 아침 햇살을 맞으며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닝커피는 우리 하루의 일과가 되었고, 단순한 기호 음료 이상,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하는 마음의 벗이 되었습니다.
꽤나 오래전 엘에이 북부 노스지리에서 어느 새벽에 큰 지진이 일어났을 때 전기와 개스관이 두절되어 모두 망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음날 조간신문 독자란에 아침에 커피를 못 마시는 것이 제일 큰 고통이었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공감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커피가 이른 아침 식전의 일과라면 차는 보통 식후, 그리고 늦으막한 오후 3시전후 티타임 휴식시간에 즐깁니다. 차의 역사는 인류 문화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고대 중국 역사기록에도 나오고 주로 왕과 귀족들의 기호식품이 되었다가 차츰 민간에 퍼져서 중국인들의 일상에 필수 음료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차 문화가 동쪽으로 한국, 일본에 전파되고, 실크로드나 해양 상선을 를 통하여 서양에도 전하여졌다고 합니다. 흔히 말하기를 겨울이 길고 음습한 기후의 영국에서 많이 즐겼고, 그들의 독특한 차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반면 기후가 온화하고 물자가 풍부한 프랑스에서는 이후에 전래된 독특한 향기를 갖은 커피가 그들의 살롱 문화에 영합하여, 대중이 사랑하는 음료로서 자리를 매겼다고 합니다. 영국의 차는 주로 발효시킨 붉은색의 홍차이고 프랑스의 커피는 우유와 당분을 가미한 부드러운 카페올레가 주류를 이룹니다.
그러나 동양권에서는 물에 삶거나 볶아서 말린 자연 그대로의 녹차가 주류를 이루고, 은은한 자연의 풀 향기를 있는 그대로 즐기는 편입니다. 물론 중국의 일부 산악지대나 고온다습의 남방에서는 발효시킨 홍차가 필수 불가결의 음료 내지는 의약품으로 오랜 전통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커피를 코로 마시는 음료라면 우리 동양인의 차 문화에 녹아있는 전통은 자연의 향기를 혀끝으로 음미하며, 차의 정기(Spirit)과 한 몸이 되어 자연회귀의 철학이 답겨있다고 보겠습니다.
“차와 찻잔”을 함께 마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따뜻한 물에 우려낸 차를 정성스레 찻잔에 받아 입으로 가져갈 때 찻잔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나의 온몸에 촉각으로 또 시각으로 전하여져서 우리 마음 깊은 내면에 화학반응이 일어난다고 보겠습니다. 차의 정기와 오묘한 찻잔이 나와 한 몸이 되는 승화의 순간이겠지요. 우리 식생활에는 필요한 갖가지 도구가 있습니다. 밥그릇 국그릇 반찬그릇, 그리고 찻잔, 커피머그, 와인잔, 맥주잔, 소주잔 등등. 용도에 따라 각양의 조각품이 있습니다. 각각의 그릇에는 기능과 제작자의 마음과 예술혼이 담겨 있습니다.
같은 차라도, 같은 커피라도 잔이 바뀔 때 맛이 확연히 다름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예민한 정서 탓일까요? 얼마전에 나의 고향친구가 미국에 놀러오면서 한국 차를 선물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렇게 좋은 한국차가 있었다는 것에 몹시 놀랐고 마지막 한방울까지 아끼며 음미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친구에게 이 멋진 차를 끓여서Griffith 공원에 올라가서 마시자고 합의해서 보온병에 담아 갔습니다. 산 정상 적당히 조용한 그늘에 자리를 잡고 보온병 뚜껑에 한잔씩 나눠 마셨는데, 그 맛이 너무도 달라서 크게 실망했던 기억이 생생 합니다. 마치 마음이 불편한 잔치상의 진수성찬이 맛이 없듯이, 우리 마음으로 마시는 차는 나의 정이 담긴 찻잔, 조용한 분위기, 단정한 마음가짐이 한데 어우러져야 되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차에 비하여 향이 진한 커피는 비교적 그릇이 바뀐다고 큰 차이는 없겠으나, 그래도 내가 즐겨 마시는 머그에 담아 마시는 커피와 종이컵이나 알루미늄 텀블러에 받아 마시는 커피는 역시 맛이 크게 다릅니다. 근래에는 한국에도 “바리스타”라는 훈련된 커피 전문가에 의해, 커피 맛과 향을 개발하는 문화가 정착되고 있습니다. 고도로 발달된 문화 형태 중 하나겠지요. 그런데 어느 커피 전문집에서도 자기 나름의 커피머그를 제공한다는 말을 못 들어 보았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정제된 커피가루와 Drip기술, 그리고 어울리는 머그잔이 삼위일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중국을 중심으로 청화백자의 기술이 발전되면서 도자기를 소유하는 것이 신분과 부의 상징으로 보는 풍조가 전 세계를 휩쓸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이후 백자 제조의 비밀이 풀리면서 고려자기 일본 자기, 영국 자기, 프랑스 자기, 독일 자기 등등이 발전되었다고 합니다. 근래에는 수제품 자기는 그저 예술품 만으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그러나 차와 커피를 즐기는 행위가 고도의 세련된 문화 형태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면, 차와 찻잔, 커피와 커피머그라는 세트는 맛과 멋을 아는 사람에게 분리할 수 없는 한 몸이 아닐까 제 나름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