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뜻을 쫓는 삶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9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10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에페 2, 8-9)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루카 12, 20-21)
어떤 분이 물어왔습니다. “왜? 하느님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그래서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라고 해야할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이름조차 부르지 못했고, 창조주를 형상화하거나 인간의 이미지로 보다 가깝게 다가서는 것 조차 불경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세계의 다양한 종교들 안에서 최고의 존재를 다양한 언어로 표현하거나 섬기는 경신행위는 그 자체가 정화와 새로운 삶으로의 다짐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인간다운 모습의 하나입니다. 사람들의 현실적인 생활이 때로는 고달프고, 신에게 의지하거나 청하지 않으면 안될만큼의 한계를 있는 그대로 고백하며 신의 도움을 청하는 것은 겸손함은 물론이고, 신과의 진정한 결합을 원하는 것입니다.
단지 자기의 한계와 세계관의 모순됨을 벗어나 신의 역할을 희망하며 성실하게 소통을 원하는 고백은 위의 복음에서 어리석은 부자의 그릇된 집착이나 애착을 공감은 하지만 그처럼 잘못 선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떤 질병이나 사고, 또는 세월이 흘러 때가 되었든 언젠가는 마지막의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바로 그때에 그 순간을 간절히 기다려온 사람처럼 행복한 손님맞이를 하기위해서는 하느님이라 부르는 분과의 친교와 정감어린 시간안에서의 잦은 만남이 필요합니다. 그런 경건한 신앙인을 그분은 좋아하십니다.
영적독서
1. 집회 1, 11-21 주님을 경외함
2. 이사 29, 9-14 분별없는 백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