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본당 신부님들이 매 달 한 번씩 양로병원에 봉사자들과 함께 입원 중인 본당 교우들을 방문하여 봉성체를 영하는 날이다. 올해로 93세 되신 시어머님이 영성체를 잘하실지 걱정스러워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갔다.
신부님을 뵙자. 어머니는 “용서해 주세요” “용서해 주세요” 하신다. 어머니는 계속해서 이 말을 반복하셨다. “어머니, 신부님 이세요. 어머니 영성체 드리려고 오셨어요. 감사합니다. 하세요” 하자, 어머니는 대뜸 “ 감사합니다. 야! 네가 신부님이냐?”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어머니는 태연하게 “용서해주세요. 내가 아픈데 무슨 죄가 있겠어. 하지만 용서해 주세요” 참 웃지 못할 어머니의 말씀에 마음이 짠해져 왔다.
오래전 결혼을 해서 미국에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어머니는 나를 보기도 아까운 우리 막내며느리 라고 하시면서 친자식처럼 사랑해 주셨다. 신혼 시절 어머니의 아파트를 방문할 때면 이부자리를 펴주시며 힘드니깐 넌 꼼짝도 말고 누워 있거라 하시면서 매콤한 남미식 양념 닭을 사다가 주시곤 하셨는데 그 새콤하고 매운 닭맛을 생각하면 지금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그 시절 어머니는 정부에서 받는 돈을 모아 목돈을 마련하여 내 손에 꼭 쥐어주시면서 고생 많다며 늘 나를 격려해 주셨던, 남들은 어머니를 호랑이 할머니라고 불렀지만 나한 테는 언제나 목청 크고 정이 많은 분이셨다.
둘째를 낳고 사주쯤 지난 어느 날 어머니는 다운타운 주얼리 상가에 있는 귀금속상에 나를 데리고 갔다. 작은 보석이 박힌 쌍가락지를 사서 손에 끼워주시면서 아들 낳느라 수고했다. 내가 니 형님이 첫 손자를 낳았을 때도 반지 안 해 줬는데 넌 너무 고생이 많았고 예뻐서 해주는 거니까 형님한테는 말하지 마라 하시면서 당신도 똑같은 반지를 하나 사서 끼셨다.
그 후에도 알록달록한 색깔의 옷을 좋아하는 어머니는 마음에 드는 옷을 보면 두 개를 사서 하나는 나를 주고 다른 하나는 본인이 입으시곤 했다. 어머니와 똑같은 옷을 입는 막내며느리의 마음이 그리 편치 않았음을 아마도 어머니는 모르셨을 테지만, 어머니는 나와 같은 옷을 입는 것으로 나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표현하신 것 같다,
그렇게 정정하시던 어머니가 여든이 넘어가면서 혼자서는 거동을 할 수 없게 되자 시누이가 십 년 가까이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막내 누나의 수고를 더는 볼 수가 없던 남편은 삼 년 전부터 어머니를 양로 병원에 모셨다
대부분이 삶의 마지막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분들의 빛나던 인생이 이제는 작은 침대 하나 들어가는 공간에서 꺼져가는 모습을 보며 하느님의 존재를 느끼곤 한다.
‘용서해 주세요’ 어머니는 성삼일을 하루 앞둔 사순절의 의미를 그렇게 내게 일깨워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