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도 유통 기간이 있나?
어느 토크쇼에서 방청객 여성 한 분이 아들을 홀로 키웠는데 그 아들은 “대한민국 공식지정 효자”였다고 표현했다. 키우면서 한번도 아니요 소리를 하지 않은 그 착한 아들이 결혼을 해서 함께 살았는데 어느날 ‘엄마도 이젠 행복하게 사세요. 제가 할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분가입니다.’ 하면서 분가한지 네 달이 되었는데 정작 엄마의 행복은 끝이 나버렸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힘들게 혼자서 아들을 키웠던 그 때가 행복했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안스럽고 또한 안타까웠다.
엄마 스스로 자신의 아들이 대한민국 공식 효자라고 했는데 난 그 아들에게 연민이 느껴졌다. 아들도 엄마처럼 행복했을까? 아들은 엄마의 행복이 자신에게 너무 치우쳐져 있음을 어릴때부터 알고 있었던거 같다. 그치만 거기까지가 엄마의 행복이었다.
가만히 듣고있던 진행자는 이렇게 말한다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행복의 유통 기간은 지났습니다. 우유가 유통 기간이 지나면 썩거나 치즈가 되거나 둘 중 하나지요. 그렇다면 어머니는 썩어서 버려지겠습니까? 아니면 치즈가 되겠습니까?
엄마는 눈물을 삼키면 내 행복을 찾으려 노력하겠다고 한다. 아들은 자라면서 엄마에게 큰 행복을 주었다. 그치만 그 걸 붙들고 있을수 만은 없다. 때가 되면 새는 둥지를 날아가야하고 또 보내야만 하는게 서로가 행복할 수 있는 길임을 이성으론 알고 있지만 감성은 그렇지 못한 순간이 참 많다.
주말에 남편과 함께 모임을 가야하는데 아이린이 마침 그 날 밤에 꼭 가고 싶어 하는 파티가 있었다. 대학에 가 있는 브랜든한테 연락을 했다. 금요일날 수업 마치고 집에 와서 누나 라이드좀 해주면 좋겠다고 브랜든은 그렇게 하겠다며 고맙게도 집에 와 주었고 우리 부부는 편한 마음으로 모임을 잘 다녀 올 수 있었다.
다음날 브랜든은 저녁을 먹고 학교로 돌아갔고 두 시간후 텍스트가 왔다 ‘ I’m home’ 한번도 그런 표현을 쓴적이 없었다. 학교에 왔다 혹은 기숙사에 왔다로 문자를 보내왔었지, 지금은 올 가을 아파트로 나가서 친구와 살고 있지만 거기가 아들의 집이라고는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지적장애를 가진 누나를 둔 브랜든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일찍 철이 들었고 속도 깊은 착한 아들이었다. 그 아이가 짊어졌던 맘의 무게는 얼마나 컸을까.. 또한 아들한테 걸었던 기대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많은 부담을 주었을것을 나 자신만은 알고있다.
아들이 주었던 행복의 유통 기간은 그 때 까지 였음을 깨닫는다. 이젠 치즈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포장 되지 않은 사랑으로 아들과의 또 다른 행복을 만들어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