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7일 추수감사절을 하루 앞둔 수요일 오후 3시45분 비행기로 루르드를 향하는 프랑스 비행기를 탔다 아버지만 집에 남기고 와서 마음은 편치 않았지만 엄마를 모시구 가는 의미있는 여행이라 맘은 아이들처럼 마냥 들뜬다.
11시간동안 이 작은 공간에서 비비적거릴걸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지만 성모님이 발현하신 루르드를 향한 설렘으로 이 여행을 시작했다.
미국시간 새벽 2:40분, 프랑스시간오전 11시 40분 드디어 샤를드골공항에 도착했다. 루르드를 가기위해 올리 (orly)공항을 향하는 택시 안에서의 프랑스의 바깥경치는 늦가을의 습기를 잔뜩먹은 흐린하늘과 노랗게 물든 단풍이 떨어져 거리가 좀 쓸쓸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고국의 가을 풍경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임을 입증하듯 낡은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파리의 첫인상은 찬 날씨와 어둠이 내리는 탓에 차분하게만 느껴졌다. 택시에 타지마자 잠들어버린 두 아이들은 쉴새없이 머리를 끄떡 거린다.하기야 미국시간 새벽 4시 50분, 한참 잠잘 시간이지 ...
한시간 정도를 달려 도착한 루르드공항은 거의 인적이 끊겨져 있었고 멀리 보이는 거대한 피레내 산맥에는 하얗게 눈이 내려있었다. 친절한 프랑스 사람 시몬을 만나 그가 불러준 택시를 타고 루르드를 향했다. 영하2도의 차가운 겨울날씨가 오랜만에 느껴보는 겨울을 실감나게 했다. 어둠이 내리는 시골길은 참으로 정겹게 느껴진다.영하로 떨어진 루르브의 밤은 너무나 고요했고 아무도 없는 성지안에서 처음 만난 성모님은 홀로 불을 밝히며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듯 반겨주셨다.
루드드공항에서 만나 택시를 불러주었던 친절한 현지인 시몬은 250여개가 넘는다는 많은 호텔중에 우리와 같은 파노라마라는 호텔에 묵었고 이후 식당과 이른새벽 성지에서도 만나는 인연을 갖게 되었다 친절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택시운전사 애드가는 프랑스에서 뛰는 사람은 개와도둑밖에 없다는 그들의 속담을 증명하듯 20여분을 추위에 덜덜떠는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긴 인사를 손님과 서로 나누고 이름을 주고 받은 후에야 우리를 차에 태우고 호텔로 향었다. 참으로 여유로운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갖게했다.
다음날 성지안은 연 600만명이 이곳에 순례를 한다는말이 무색하듯 몇몇 소그룹 단체와 우리같은 개인들이 넓은 성지안을 여유롭게 거닐고 있었다.
지난 5월에 이곳을 덮쳤던 홍수로 인해 성지 옆을 흐르는 강이 범람해서 성지안으로까지 물이 들어와 성지가 통제가 되었다고한다. 훼손된 건물의 공사가 비시즌인 지금 이곳 저곳에서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9시에 작은 채플에서 20여명이 신부님 두 분이 주재하는 미사에 참여했다.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느낌이었다.
미사를 마치고 성모님발현 동굴옆에 침수욕조에선 보통 시즌엔 4시간씩 기다려야 한다는데 시즌이 아닌 지금 우리는 바로 침수 할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벨라뎃다 성녀가 성모님의 뜻에 따라 파낸 샘물에서 나오는 물을 탱크에 저장해서 그 물을 끌어서 침수할수 있도록 욕조를 채우고 또 기적수를 마시고 받아갈수 있도록 여러개의 식수대를 설치했다.
10시에 시작 되는 침수 시간이 되자 우리는 바로 침수를 할 수 있었는데 두명의 봉사자가 양 옆에서 팔을 잡아 욕조에 몸을 담그도록 도와주는데 물이 얼음장같이 차가워서 깜짝 놀랐다. 순간 최대한의 노력으로 성모님께 간구의 기도를 바쳤다. 몸은 몹시 떨렸지만 성모님께 침구하며 기도 드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순간을 고대하며 이곳에 왔을까? 치유의 기적을 바라는 간절함으로 이 작은 마을 루르드를 찾아 왔을 수많은 사람들의 열망을 성모님은 알고 계실거라 믿는다. 나 또한 아이린을 이곳에 데려오고 싶다는 오랜 동안의 소망을 이루는 감회깊은 순간이었고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시간이었다.
또한 이곳에 오기위해 인터넷 검색중에 알게된 성모신심시녀회 김그라시아 수녀님을 만나 오후 동안의 성지 안내를 자세하게 받을수 있는 행운을 갖게 되었다. 우리의 짧은 일정을 아시는 주님께서 준비해주신 우연같은 사실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넘쳐나는 순례객을 위해 지어진 로사리아대성당은 모자이크로 환희, 고통, 영광의신비를 표현하는 각단의 그림을 모자이크 벽화로 표현했다. 그리기도 쉽지않을 벽화를 작은 조각의 모자이크로 표현 했다는것이 어찌나 오묘한지 한참을 쳐다보았다.
선종하신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첨가하신 빛의신비는 성당 외부 모자이크벽화로 그려져 있었는데 홍수로인해 파손된 벽화와 바닥 보수공사로 요즘은 이곳에선 미사를 할 수 없다고 한다. 수녀님의 자상한 설명으로 성모님이 발현하신 동굴,로사리오 성당,바실리카성당의 설명은 옛날 애기를 듣는 듯 그때의 상황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벨라뎃다 기념관에는 성녀께서 성모님을 18번 만나는 각 장면을 표현하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사진과 성녀의 가족사진,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 신발, 의복등 천팔백년대 중반의 프랑스시골 풍경과 상황들이 잘 나타나 있었다.열살까지 온 가족이 행복하게 살았던 물방앗간 생가와 그 이후 증기 방앗간과 전염병으로 집안이 몰락하여 감옥으로 쓰여졌던 곳에 세들어 많은 식구가 함께 살았던 작은 이층방. 그 모든 악족건 속에서도 늘 기도하며 사랑으로 감쌌던 가족의 사랑이 성녀를 강건하게 지켜주셨다며 잠깐씩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우리가 자식을 위해 남겨줄수 있는 가장큰 유산은 신앙이라는 수녀님의 말씀을 마음에 잘 간직했다.
성모님 발현 100주년을 기념으로 세워진 비오십세 지하 대성당은 기둥이 하나도 없이 중앙에 제대가 마련되어있는 특이한 거대한 돔같이 생겼는데 삼만명이 한번에 미사를 함께 드릴수 있다고 한다. 6개의 다른 언어로 그 많은 사람들이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장엄한 순간을 그려본다.
4월에서 10월까지의 시즌엔 아침 6시부터 자정까지 미사가 이루어지고 촛불행렬, 성체조배등을 할 수 있다는데 시즌이 아닌 11월은 춥고 조용했지만 하얗게 내린 서리와 낙엾이 구르는 성지는 차분한 마음으로 걸으며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교회의 시작인 대림절을 준비할수 있는 귀한 시간을 가질수 있어서 좋았다. 기회가 된다면 어느 부활절쯤에 이곳을 다시 찾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어본다…
다음날 새벽 여섯시반 파리에 사는 조카를 만나기위해 아직 어둠이 짙은 루르드공항을 향하는 거리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찬빗줄기가 얼굴에 떨어져내렸다. 오래 오래 이곳에서 만난 성모님을 마음에 품고 살겠다고 다짐하며 떠나는 맘은 결혼을 하고 엄마를 떠났던 이십여년전의 그 날처럼 먹먹하게 가슴 한쪽에 허전한 바람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