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그리나이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하느님의 얼굴을 언제 가서 뵈오리이까?
당신의 빛과 진리를 보내시어, 저를 인도하게 하소서. 당신의 거룩한 산, 당신의 거처로 데려가게 하소서. (시편 42, 3; 43, 3)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요한 10, 16)
5월 성모성월입니다. 계절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달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자연을 보면 시간적으로 새싹이 자라나 제모습을 다 드러내고, 이대로 가을의 단풍까지 나무의 잎이 더 이상 자라지는 않습니다. 자기가 자랄 만큼만 자라는 모습도 신비롭습니다. 땅의 거름이 좋아서 더 자랄 수 있을 것처럼 사람의 생각으로는 계산도 해보는데, 각각의 나무의 잎은 본래 주어진 모습대로, 크기 만큼에서 충분히 만족을 합니다. 놀랍고 신기하지요? 이렇게 대자연의 신비와 언제나 시간에 순응하며 자신이 본래 타고난 본성 그대로 위만을 바라보고 최선을 다하는 자연의 겸손함이 바람처럼 소리내지 않고 다가와 머뭅니다.
이 넓은 세상에 코로나의 출현과 그 영향으로 구체적인 우리의 삶이 너무나 바뀌었고, 앞으로도 어떤 변화를 이끌어갈지 예측하기 힘듭니다. 요즘엔 방송의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비대면 녹화와 생방송이 유행입니다. 클래식 공연도 마찬가지 입니다. 객석에 사람들이 없고, 무대에 온통 전세계 인터넷 방송의 모니터속 얼굴들만 가득합니다. 출연자들은 몇사람하고 그들 앞에는 카메라 몇대가 전부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인간 존재 자체가 바이러스가 될 수 있겠구나! 서로들 피하고, 얼굴 마주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도 우리가 영적존재이고, 하느님, 신을 찾고 있으며,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는 주님의 자녀들이라고 하면서도 코로나 앞에서는 전혀 그러한 신원이 통하지 않고 있습니다.
요즘 내적으로 되묻고 답을 찾는 화두는 무엇입니까? 무엇에 목말라하고 있고, 하느님의 응답은 무엇입니까? 과연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아무일이 없던 상태로 되돌아 갈 수 있을까요? 혹시 코로나 보다 더 큰 녀석이 지금 준비하고 있다면 교회는, 우리의 일상은,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떻게 될까요?
늘 마음으로 지향을 두고 살아온 길, 그안에 나만의 참된 기쁨이 있었고, 이웃이 조금 몰라주었어도 그런대로 만족할 수 있었고, 코로나로 조금 길이 바뀌었다고 해도 기꺼이 길을 우회할 수 있는 여유로움, 당당함, 창조주 하느님과 나만의 분별된 열매라면 언제라도 변화를 추구하는 용기를 드러내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한주간 5월의 시작, 더 큰 희망으로 성모성월 시작합시다.